서구 열강의 흔적, 브랜드가 되다[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27〉마천루 도시 상하이
황푸강과 우쑹강 교차점에서 남쪽을 바라본 번드(와이탄)의 1930년대 모습. 오른쪽 피라미드 꼭대기를 가진 마천루가 캐세이 호텔, 왼쪽 시계 꼭대기를 가진 마천루가 관세청, 그 옆 돔 지붕 건물이 HSBC 마천루다. 이중원 교수 그림
상하이는 21세기 마천루 도시다. 한국의 명동에 해당하는 난징루(난징동루) 지하철역에 내려 동쪽으로 걸어 나가면 와이탄이 나온다. 이곳 수변에 서서 황푸강 건너 푸둥을 보면 꽃 모양의 진마오타워(420m)와 병따개 모양의 세계금융센터타워(492m), ‘스크류바’ 모양의 상하이타워(632m)가 솟구친다. 상하이는 20세기 초에 이미 세계적인 마천루 도시였다. 그 시작은 어땠을까.
와이탄의 옛 이름은 ‘더 번드(The Bund)’였다. 번드는 영국인들이 봄베이(오늘날 인도 뭄바이)에서 인도인들에게 배운 힌두 공사용어로 ‘성토한 수변(워터프런트)’이었다. 영국은 식민지 국가에 내륙 수도의 ‘안티테제(반대 또는 상반되는 것)’로 수변도시를 즐겨 세웠다. 본래 중국의 전통 무역항은 광저우였다. 아편전쟁에서 이긴 영국 동인도회사의 휴 린지는 양쯔강과 태평양이 만나는 번드의 지리적 장점을 간파했다. 여기에 새로운 마천루 도시를 세우면 중국인들에게는 선진 과학기술 문명 소개라는 명분이 되고, 자신들에게는 양쯔강을 따라 전개되는 중국 거점 도시들과 무역할 수 있는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 영국인들은 치외법권, 무역관세, 항구 개방 등을 꼼꼼히 문서에 적었다. 돌아보면 1842년 난징조약은 ‘번드 건설 청사진’이었다. 홍콩과 마카오의 청사진이기도 했다.
영국은 번드를 황푸강(동쪽)과 우쑹강(북쪽)이 만나는 교차점에 세웠다. 영국 공사관은 사방으로 트인 번드 북쪽에 자리 잡았다. 우쑹강을 기준으로 남으로는 영국인 땅이었고, 북으로는 미국인 땅이었다. 영국인 땅 남쪽으로는 프랑스인 땅이었다. 번드에서 약 800m 아래에는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옛 읍성이 있었다. 19세기 중반 서양인들이 제작한 지도를 보면 중국인 읍성을 ‘차이나타운’이라고 명기했다. 마치 본토 중국인을 해외에서 건너온 이민자 취급을 한 주객이 전도된 이름이었다. 번드의 겉모습은 영광이었지만 속사정은 치욕이었다.
출처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