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청년토목인

다산 정약용은 '청년토목인'
2019 토목의 날에 청년토목인 정약용을 만나보세요
일시 : 2019년 3월 29(금) 14시 ~ 18시
장소 : 논현동 건설회관
강연자 : 김평원 / 인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오늘날의 관점에서 정약용은 공학적 소양을 갖춘 인문학자일까? 아니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엔지니어일까?
정약용은 이미 초계문신(抄啓文臣) 시절 한강 배다리(주교)를 설계하였고, 계속 승진하면서 신도시 수원 화성을 설계한 후, 유배지로 물러나 많은 분야의 책을 저술하였다.
한강 배다리의 공법을 개발하고, 신도시 화성을 설계하는 일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아니라 국가단위 토목 공사이다. 우리는 정약용을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알고 있지만, 생애 주기적 관점에서 정약용의 삶을 되돌아보면 청년 관리 시절에 두각을 나타냈던 직무 활동인‘시빌 엔지니어링’을 그의 직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약용은 청년 시절 국가 단위 토목 공사에서 활약한 후, 남은 삶의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많은 책을 저술한 학자로 보냈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공법이 반영된 배다리 설계 지침서인 『주교지남』은 현대의 교량 공학 교과서에 해당하며, 신도시 화성 설계 지침서인「 성설」은 토목 및 건축공학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비록 정약용의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설계도, 시방서, 공문서, 시공 일지 등을 10권 9책으로 모아 국가가 발행한 『화성성역의궤』는 각종 설계도, 시방서, 준공 검사 보고서를 모두 망라한 건설 백서로 손색이 없다. 대형 토목 공사를 설계하고 건설기계를 발명하여 실제 시공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정약용은 조선의 근대 공학을 세운 명실상부한 근대 엔지니어로 평가할 수 있다. 정약용은 오늘날 토목 기술사에 해당하는 청년 토목인이었던 것이다.